봄의 전령인 복수초 [福壽草] 오래살아 복된 식물이랍니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오목거울처럼 생겼어~~요

햇빛을 모으고 따뜻해지기에 주변의 눈을 녹이지요.

향기없는 이꽃에 일찍나온 벌이 따뜻해서 놀러온다네요.

 

복된사람이란 말씀으로 사는 사람,

죄로부터 자유로운 깨끗한 사람이 될것이란 희망이 있습니다.     

 - 사진/글   마리안젤라 님 

 

 

 

2014년 2월 생 활 말 씀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 8)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근교,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 언덕 위에서, 그 당시 스승들이 했던 것처럼 앉으셔서, 군중에게 ‘참된 행복’에 대해 선포하십니다. 구약성서에서는 ‘복되다.’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칭송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행복’은 제자들도 부분적으로는 알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편에서 말하듯,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란 단지 주님의 산에 올라가기에 합당(시편 24, 4 참조)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도 뵐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커다란 은총을 받기에 합당한, 드높은 순결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것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참된 순결의 원천에 이르기 위해 그분을 따라가 보도록 합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요한 15, 3)고 말씀하십니다. 영혼을 정화시키는 것은 예식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다릅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해 계시듯, 예수님의 말씀 안에도 그분께서 현존해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며, 우리가 그분께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린다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즉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결이란, 말씀을 생활화한 결실입니다. 이른바 애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을 실천한 삶의 결실이 순결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가르침 안에 있지 않을 때 애착에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애착이란 사물이나 사람, 혹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하느님께만 우리의 마음을 둔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매일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께, 하느님께, 다음과 같은 시편의 간절한 기도, 곧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 16, 2 참조)라고 거듭 말씀드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주 이 말씀을 반복해 보도록 합시다. 특히 여러 가지 애착들이 좋지 않은 장면들, 감정, 격정에로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겨 선(善)에 대한 생각을 흐리게 하고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할 때, 이 말씀을 되풀이하도록 합시다.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광고 포스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가요? 안 됩니다. 예수님께 “주님, 당신만이 저의 행복이십니다!”라고 말씀 드립시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다시금 하느님께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우리 자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첫 발걸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활동이 장애물처럼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끼어들어 그분과의 관계를 흐리게 한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이 순간이야말로 그분께 “주님, 당신만이 저의 행복이십니다!”라고 거듭 말씀 드릴 때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지향을 정화시키고 내면의 자유를 되찾도록 스스로를 돕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말씀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 거룩한 불꽃으로 우리의 지향을 정화시키고 우리의 모든 내면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성경을 보면, ‘마음’이란 지성과 의지를 담고 있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으로, 우리가 이를 실천했을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간의 사랑입니다. 즉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 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 사이에 투명함과 순결함이 드러나는 특별한 나눔의 삶과 가치관,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는 우리 안에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의 현존으로 인한 것입니다.(시편 51, 12 참조) 서로 간의 사랑을 실천할 때, 말씀이 작용하시어 우리를 정화시키고 성화시키는 결실들을 맺으십니다.

홀로 떨어져 있는 사람은 세상의 유혹 앞에서 오래 견디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사랑 안에서는 자신의 순결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를 보호할 수 있는 건전한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순간순간 투쟁하여 얻게 되는 순결의 결실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분께서 어떻게 우리의 개인 생활과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지를 이해하게 되며,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 안에, 성체 안에, 그분의 말씀 안에, 형제들과의 친교 안에,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그분을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영원히 그분의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1코린 13, 12) 그때까지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감으로써”(2코린 5, 7 참조) 이미 이 땅 위에서부터 하느님의 현존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 맛보게 해 줍니다.

끼아라 루빅

이 글은 1999년 11월에 쓰인 생활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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