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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꽃말: 변하지않는 지속적인 사랑
꽃송이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요.
작은 송이 하나씩 계속해서 꽃망울을
터트리네요.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
우리가 서로 사랑할때 한송이 꽃처럼 멋질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사진/글 마리안젤라님
2014년 4월 생활말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예수님께서 언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분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기 직전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실상 작별을 고하시며 하신 말씀이었으니, 그분의 유언인 셈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기시는 말씀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말씀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진지한 자세로 이 말씀을 읽고 그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 함께 깊이 깨달아 보도록 합시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계셨으며, 이 일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그분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떠나실 때가 임박해지면서, 무엇보다 먼저 해결하셔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는 어떻게 하면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 당신 자신이 계속 남아 계시면서 교회를 이끌어 가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사 안에서 활동하심으로써 현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사의 성체성사 안에 그분은 현존해 계십니다.
그런데 서로 간의 사랑을 살아가는 곳에도 예수님께서는 현존하십니다. 실제로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이는 서로 간의 사랑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18, 20).
그러므로 공동체 삶의 깊은 중심에 서로 간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그분께서 실제로 현존해 계시면서 당신 현존의 효력을 발휘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공동체를 통해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당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실 수 있고 계속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라 생각되지 않습니까? 즉시 당신 옆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이와 같은 사랑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이 구절을 기록한 요한 사도는 서로 간의 사랑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 교회의 소명은 친교를 이루는 것,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직후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 35).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드러내 주는 표지(標識)가 진정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또한 그들을 구별해주는 휘장, 배지(badge)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삶으로 살아낸 서로 간의 사랑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표지를 보고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부족할 때, 세상은 더 이상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간의 사랑은 일치를 낳습니다. 그런데 일치는 무엇을 이루어 주나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 21). 일치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세상을 이끌어 그분을 따르게 합니다. 세상은 일치를 보고, 서로 간의 사랑을 보고 그분을 믿게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작별 인사를 하시는 중에 이것을 ‘당신의’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계명은 그분의 것이기에 그분께서 특별히 마음에 두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그저 하나의 규범, 규칙, 혹은 다른 계명과 별다름 없는 단지 하나의 계명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의 생활 방식을 제시해 주고자 하시며, 우리 존재의 기초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실제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계명을 그들 삶의 기초로 삼곤 했습니다. 성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1베드 4, 8).
일을 하기 전에, 공부하기 전에, 미사에 가기 전에, 모든 활동에 앞서 우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서로 간의 사랑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만일 그러하다면, 서로 간의 사랑이라는 이 토대 위에서, 모든 것이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 계명을 ‘새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무슨 뜻일까요? 이 계명은 알려지지 않았던 계명이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새 계명’이라는 것은 ‘새 시대’를 위해 마련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로써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최대한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는지요? 물론 우리의 사랑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 15, 9).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당신 자신이 서로 주고받으시는 바로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새’ 계명을 실천하려 한다면, 바로 그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인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랑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리스도인이기에 우리에게도 이 사랑이 주어지는 것이니 기뻐합시다. 그런데 누가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는가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신자들의 마음속에 이 사랑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부(聖父), 성자(聖子),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거룩하고 유일한 사랑으로 인하여, 서로 유사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를 성삼위 안으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으로 인해 하늘과 땅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처럼 서로 연결됩니다. 이 사랑 덕분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하느님 안에 있게 되며, 하느님의 거룩한 실재(實在)는 땅 위에,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곳에 머물러,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그리스도인의 삶이야말로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지 않는가요?
끼아라 루빅
이 글은 1980년 5월에 쓰인 생활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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