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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숭아 꽃
산행중에 향기로 사로잡아 멈추게 하더니...
열매로, 꽃잎으로 우리에게 온통 필요한 것을 주는 개복숭아 옆자리의 꽃을 형제 자매로 여겼겠죠~~!! 나무가 휠 만큼 열매도 주었으니... 불평하지 않는다면 용서할 일이 있을까란 생각이 드네요. 사진/글 마리안젤라님
2014년 8월 생활말씀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집회서 28,2). 이번 달 생활말씀은 기원전 180년부터 170년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가르쳤던 율법학자 벤 시라(Ben Sira)가 기록한 집회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는 성서에서 비롯된 지혜로운 전통 전반에 흐르는, 다음과 같은 소중한 주제 하나를 가르칩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자비로우시니, 우리는 그분의 이 같은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기에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십니다(시편 103, 3. 8 참조).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살피지 않으시고 보아 넘겨 주시며(지혜서 11, 23 참조), 우리의 죄악을 잊으시며 ‘당신의 등 뒤로 던져’ 버리십니다(이사야 38, 17 참조). ‘벤 시라’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실제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작고 비천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용서를 풍성히’ 베푸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아버지, 어머니처럼,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자녀들을 항상 용서해 주시고 그들의 잘못을 덮어 주시며, 그들을 신뢰해 주시고 결코 지치시는 법 없이 그들을 격려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시므로, 당신의 아들딸들을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하기를, 서로 화목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인류 위에 세우신 하느님의 커다란 계획은 바로 보편적인 형제애를 인류가 실현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분열과 긴장보다 더 강한 형제애, 오해와 실수로 너무도 쉽게 마음속을 파고드는 미움보다 더 강한 형제애를 지니는 것입니다. 용서할 줄 모르기 때문에 흔히 가정들이 파괴됩니다. 해묵은 증오가 친척들 사이를, 사회 그룹들 간의 관계를, 그리고 백성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때로는 설상가상으로, 한번 당한 일은 잊어서는 안 된다며 복수심을 기르도록 가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뿌리 깊은 원한은 영혼에 독이 되고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용서란 나약함의 소산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는 참으로 크나큰 용기의 표현이며, 참된 사랑입니다. 용서는 가장 이해타산이 없는 사랑이기에 가장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 이런 것은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것이니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 42-47 참조)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하루 생활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특히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지니도록 요청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 영성, 즉 그리스도교 영성을 살아가도록 불림을 받은 사람들에게 신약성경은 여기서 더 나아가, 한층 더 큰 사랑을 실천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콜로새 3, 13 참조). 서로 간의 사랑은 우리 사이에 거의 일종의 서약을 요구합니다. 이는 우리가 언제나 서로서로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비로소 우리는 보편적 형제애가 태어나도록 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웃을 용서해 주라고 당부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도 용서받을 수 있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용서할 줄 아는 만큼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 2),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 7)라고 직접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사실 마음이 증오로 굳어져 있다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알아볼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생활말씀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우리와 화해하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즉시 그를 용서함으로써 분명히 이 말씀을 생활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구석진 곳까지 꼼꼼히 살펴서 작은 무관심이나 너그럽지 못한 점도 없애고, 우리 곁을 지나는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건 우리가 지니는 그 모든 우월감이나 소홀히 대하는 태도 역시 제거해 버려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방 조치도 필요합니다. 즉 매일 아침 집이나 학교, 직장, 상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에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이를 뛰어넘으며, 판단하지 않고 신뢰해 주며, 항상 희망을 갖고 항상 믿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대사면(大赦免)의 마음으로, 모든 이를 용서하는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의 단점을 전혀 기억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를 돌아보며 우리가 예의 없이 행동한 것이나, 인내심을 잃고 내뱉은 말에 대해서는 용서를 청하거나 다정한 행위로 이를 보상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 상대편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한 일이 있다면, 그 후에는 완전히 수용하는 태도, 한계를 모르는 자비의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완전한 용서의 태도, 서로 나누고자 하는 태도, 그가 필요로 하는 바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주는 태도가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바칠 때, 특히 그분께 우리의 잘못들에 대한 용서를 청할 때,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득한 신뢰의 마음으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마태 6, 12 참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끼아라 루빅 이 글은 2002년 9월에 쓰인 생활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