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장미과 낙엽소교목)

꽃말: 기품, 품격, 순결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매화, 찬겨울을 뚫고 피는 강인한 꽃이에요.

매화꽃은 얼렸다가 따뜻한물에 우려먹을때 좋다고들하네요.

위를 튼튼하게 해준다고도 하지요.

꽃은 꽃대로 매실열매는 열매대로 사람들의 모든것이 되어준답니다.

엣선비같은 품격으로 사랑을 지니고 우리도 형제애를 굳게 살기로 해요~~!!

 

 

2015년 4월 생활말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22).

 

이달의 생활말씀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첫째 서간에서 발췌한 구절입니다. 이 서간에서 보면 당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의 사도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을 품기도 하고, 그것을 부정하기도 하는 등 공공연히 그를 얕잡아 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는 자신의 입지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뵈었다”(참조 9,1)는 사실로 마땅히 자신이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는 논리를 펼친 후, 그가 어째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삯도 포기할 정도로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는 사도로서의 권위와 권리를 드러낼 수 있었지만 기꺼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복음적 처신입니다.

그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연대감을 지니고, 복음이 가져온 새로움을 전해주기 위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까지 했으며,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자신은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었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유다인들과의 관계에서 비록 자신이 더 이상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여겼지만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다인이 아니어서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 이들과는 그도 율법과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사실 예수님 자체라는 더 까다로운 율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약한 이들”이라고 일컬은 이들(아마도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로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이들인 듯합니다.)이 있는데, 비록 그는 “강한 이”였고 매우 자유로웠지만 이 “약한 이들” 앞에서 그 또한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 것입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얻으려고”,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되풀이하여 말합니다. 사도는 착각하지 않았고, 승리주의식 기대감도 없었으며, 단 몇 사람만이 그의 사랑에 응답해 오리라는 것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모두를 사랑하며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고 하신 주님의 모범을 따라 모두에게 봉사합니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우리와 하나가 되신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느님이신 그분께서는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7).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끼아라 루빅은 이 말씀을 그의 ‘사랑의 예술’에서 초석의 하나로 삼아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풀어 말했습니다. 끼아라는 여기서 사랑의 ‘외교술’ 중 하나를 발견하여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함께 울어 주십시오.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그렇게 십자가는 나뉘어 여러 사람이 함께 짊어지게 될 것이고 기쁨은 불어나 많은 이들이 함께 맛보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하나가 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그 이웃의 마음에 부드럽게 새겨져 그도 우리와 하나가 되고자 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자신의 이상이나 계획을 나누며, 정다운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 이것이 사랑의 외교술입니다. 여느 외교술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외교술에서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형제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또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지 않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기다릴 줄도 알고 이야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고자 육신을 취하신 말씀이신 분의 거룩한 외교술입니다.”1

끼아라는 세심한 교육적 논리로 “하나가 되는 것”에 끼어들 수도 있는 일상적인 장애물들 또한 알려주었습니다. “때로는 분심이 들 수도 있고, 혹은 성급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충고하려는 그릇된 욕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우리에게 이웃과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이 우리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거나 혹은 그에 대한 다른 판단들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이웃의 환심을 사려는 은밀한 계산이 우리를 가로막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잘라 버리거나 제쳐 두는 것이 참으로 필요합니다.”2 그리하여 이 끊임없고 지칠 줄 모르며, 오래 참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랑은 이제 더 거대하고 더 강한 하느님의 사랑에 녹아들게 됩니다.

이 소중한 지침들은, 이 한 달 동안 생활말씀을 실천하면서 상대편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그가 살고 있고 겪고 있는 것에 공감하고, 걱정이나 기쁨도 함께 나누면서 내면으로부터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이 복음적 초대를 마치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생활신조나 생각은 없는 듯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라는 요청으로 해석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편이 되기에 이를 정도로 사랑하고 모든 것을 사랑의 선물로 나누어 주며 그것을 통해 진정한 관계가 생겨나도록 한다면, 비록 그 때문에 상대편의 마음이 상하게 될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알릴 수 있으며, 또 마땅히 알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늘 더 깊은 사랑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고, 평온무사한 공존을 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기꺼이 봉사하고자 하는 자유인의 표시로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가 되려는 목표를 늘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달에 우리가 살게 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앞서 언급했듯이,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라는 표현으로부터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모든 것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구원하려는 바람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상대편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이미 그 안에 존재하는 선과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게 하며, 그 과정에서 저지를 수도 있는 실수들은 깨끗이 불살라 버리고 그 안에 복음의 씨앗을 심기 위한 방편입니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로서는 그 어떤 한계나 핑계 거리도 찾을 수 없는 과제로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이를 맡기셨기 때문에 이 과제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단지 사랑만이 가능하게 해 주는 그런 창의성을 발휘하여 해내야 했습니다.

이런 지향성이 우리의 “하나가 되는 것”에 궁극적인 동기를 부여합니다. 정치나 경제 부문에서도,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지닌 욕구과 필요를 포착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만, 거기서는 늘 이익을 찾습니다. 반면 끼아라는 또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 거룩한 외교술에는 아마도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하고 위대한 특징이 있는데, 곧 상대방의 선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어떤 이기심의 그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3

그러므로 “하나가 되어” 모두의 내면에서 사랑이 자라나도록 도와주고, 그렇게 보편적 형제애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합시다. 이는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꿈이며,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 주신 이유입니다.

 

파비오 챠르디

 

1 「외교술(Diplomazia)」, in 『영성의 저술 1권(Scritti spirituali/1』), 로마, 20035, 88-89쪽 참조.

2 『삶이라는 여행(La vita, un viaggio)』, 치타 누오바(Città Nuova), 로마, 19944, 63쪽 참조.

3 「외교술(Diplomazia)」, 8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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