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죽나무(때죽나무과)/ 낙엽소교목 /꽃말은 겸손 꽃은 약재로 열매는 머릿기름, 나무는 나이테가 안보일정도로 고와서 지팡이등에 쓰임 노란수술을 가득담고 머리를 숙인것처럼 아래 땅을 향해 피는 꽃, 밤에는 등불처럼 보여요 내 모든 고통을 이미 취하셨을 그분의 마음같은 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용기를 내라고 나를 부르시네~~~여!! 사진/글
최 마리안젤라
2015년 7월 생활말씀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 33).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음에 몰아넣는 사람들 손에 넘겨지시기 전,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사는 이 말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 함축적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께서 성부와 맺고 있는 관계와 성부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명을 밀도 높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 땅을 떠나 성부께로 되돌아가시지만, 그분 제자들은 세상에 남아 예수님의 과업을 계속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 또한 그분처럼 미움 받고 박해를 받을 것이며 심지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요한 15,18; 16,2 참조). 예수님의 사명이 그랬듯이 제자들의 사명 또한 힘겨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벗들이 직면하게 될 어려움과 시련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방금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요한 16,33)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중에 당신 곁에 모인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앞으로 수 세대에 걸쳐 당신을 따르게 될 모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들 중에는 우리도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기쁨도 있겠지만 '고난' 또한 적지 않습니다. 불안한 미래, 불확실한 일자리, 가난과 질병, 자연재해나 전쟁에 따르는 고통, 가정에서나 국가 간에 만연된 폭력 등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난도 있습니다. 복음을 한결같이 실천하기 위한 매일의 분투, 하느님의 메시지에 무관심한 듯한 사회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공공연한 박해나, 그게 아니더라도 조롱과 경멸 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고난을 직접 겪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고 계시지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 33).
너무나 단호하고 확신에 찬 이 말씀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자마자 죄인이 되어 매 맞고 사형선고를 받으시어 가장 잔인하고도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죽임당하신 분께서 어떻게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세상을 이기기는커녕 배반당하고 거부당하셨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시어, 완전히 실패하신 듯합니다. 무엇이 예수님의 승리인가요? 물론 그것은 부활입니다. 죽음은 예수님을 손아귀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거두신 승리는 우리 또한 그에 참여시킬 만큼 위세 등등한 승리입니다. 그 승리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당신과 더불어 충만한 삶, 새로운 창조를 향해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목숨을 내어 주신, 그분의 가장 큰 사랑의 행위 자체가 승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패배 속에서 온전히 승리하셨습니다. 죽음의 폐부 깊숙이 들어가시어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셨고, 부정적인 모든 것, 모든 어둠과 고통을 하느님이시고 사랑이시며 충만함이신 당신과의 만남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승리를 생각할 때마다 기쁨에 벅찼던 듯합니다. 사도는 만일 예수님께서 모든 역경, 심지어 죽음이라는 가장 큰 역경까지도 똑바로 대면하여 이겨 내신 것이고 보면, 우리도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7-39; 1코린 15,57 참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 33).
이 달에 우리가 늘 염두에 두게 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확신과 희망을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겹고 어려울지라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그 모든 것을 직접 취하시어 극복하셨다고 확신합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내면의 힘이 없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고 투쟁하시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어려움과 시련, 유혹에 휩쓸릴 위험에 놓일 때 우리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면 제 이 모든 '고난' 또한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잘 아실 것입니다. 저에게, 저의 가정에, 제 직장 동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마치 넘어설 수 없는 난관처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듯하지만, 우리 가운데 계신 당신과 함께라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을' 만큼 이 역경에 직면할 용기와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 삶에 대해, 모든 것이 쉽고도 즉각적으로 해결되리라는 승리주의적 전망을 갖자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고통과 불의, 버림받음과 죽음의 드라마를 살고 계셨던 순간에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사랑으로 고통을 직시하고 죽음 후의 삶을 믿는 이의 승리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때로는 예수님처럼, 순교자들처럼 악에 대해 완전히 승리를 거두는 것을 보려면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따금 우리는 천국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마치 천국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용기를 내어 어려움에 직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약이나 고통을 마비시키는 마취제, 혹은 불의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게 만드는 비겁한 변명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과 부활에 대한 믿음은, 모든 역경을 직시하고 시련 중에 있는 타인들을 도와주며, 결국은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생명이 죽음을 쳐부술 것임을 믿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추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우리 가까이 있는 이들이나 세상 곳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사이에 계시는 예수님을 다시 전적으로 신뢰하도록 합시다. 그분은 세상을 이기셨고, 그 승리에 우리를 참여하게 해 주시며, 당신께서 우리 자리를 마련하시러 먼저 가신 그 천국을 우리에게 활짝 열어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온갖 시련에 직면할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비오 챠르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