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말발도리 (범의귀과)

꽃말: 애교

순우리나라 꽃이름에요. 꽃이 매화를 닮아서~ 열매가 말의발굽모양을 닮았다해서 부른답니다.

나무가 부러질때 댕강소리가 나서 댕각목이라고도 부른다네요.

산벚과 진달래가 한창인 봄산행에서 개나리를 닮은듯 피는 순백의 꽃은 산행하는 이들의 마음을 흔든답니다.

계곡의 바위틈 척박한 곳에서 꽃을 피우는 생명의 힘에 경외심을 갖게도 해요.

교회에속한 이들 10억중의 하나인 나는 세상이 예수님을 알아보게 살았나? 를 생각케 하네요

 

2016년 1월 생활말씀

“여러분은 주님의 위업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1베드 2,9 참조)

주님께서는 하시는 일마다 위업을 이루십니다. 주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보시니 “좋았고”(창세 1,25 참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만물을 그들에게 맡기고 보시니 “참 좋았습니다”(창세 1,31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과업을 이루셨습니다.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백성을 만드시고, 이 백성에게 하늘 나라의 삶인 참된 형제애를 선사하심으로써, 서로를 수용하고 함께 나누며 자신을 내어주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 서간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을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10)으로 만들어 주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 역시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서, 우리 사이에, 우리 주위에 얼마나 큰일을 이루었는지를 깨닫는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고, 기쁨에 겨워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주님의 위업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서로 고립되어 있다면,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새로운 인간관계의 탁월함을 제대로 증거하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모든 백성에게 이렇게 권고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싸우기 좋아하고 파벌을 가르거나, 심지어 서로에게 그저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면서 “주님께서는 새로운 백성을 만드시어 우리를 이기심과 증오와 원한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서로 간의 사랑을 우리의 법률로 주시어 서로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셨다”고 선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사고방식이나 전통, 문화 등 차이점이 많이 존재하지만, 일치란 획일화가 아님을 인식하고 다양성을 존중하여 받아들임으로써, 그런 무한한 다채로움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기념하는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 동안, 그리고 올 한 해 동안 우리가 가야 할 여정입니다. 이달 생활말씀은, 서로 다른 교파의 교회와 공동체에 속한 우리 각자가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주님의 놀라운 위업을 서로 나누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이런 다양성 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구체적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믿을 만한 방식으로 그 과업을 ‘선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끼아라 루빅은 우리가 이 길을 힘차게 갈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사랑은 그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 주위에 그리스도교가 가져오는 평화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는 어제 태어났지만 이미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라고 수세기 전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했던 말을 오늘날에도 되풀이하게 해 줍니다. (…) 사랑!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이 필요한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교파의 교회에 속한 우리 그리스도인 숫자는 모두 합하여 10억이 넘습니다. 숫자가 많은 만큼 더 눈에 띄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갈라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지 못하며,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보지도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간의 사랑과 일치를 통해 세상이 우리를 당신의 제자들로 알아볼 것이며, 우리를 통해 당신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5) (…) 오늘날의 세상은 우리 각자에게 사랑을 요청하며, 일치를, 친교를, 연대를 요청합니다. 또한 각 교회로 하여금 수세기에 걸쳐 분열되었던 일치를 재건설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파비오 차르디 편집 테르툴리아노, 호교론, 37.7.
Chiara Lubich: Il dialogo è vita, Roma 2007, pp.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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