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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불알꽃 (개불알풀속:Veronica) 두해살이풀 꽃말:기쁜소식 열매의 모양땜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워낙 작은 꽃이라 열매 찾기도 쉽지 않아요 양지바른곳에서 봄에 제일 먼저 흔하게 피는 꽃, 복수초보다도 먼저피는 부지런한 꽃이에요. 꽃이름을 처음 명명한이는 이꽃의 안쪽 허니라인을 들여다보면서 예수님의 피땀얼굴을 닦아드렸던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나타났 듯 그 흔적을 보았다고도 하네요. 그분이 지니셨던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로 해요.
2016년 2월 생활말씀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이사 66,13) 울면서 엄마 품에 파고드는 아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슨 까닭이든, 중요한 일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어머니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고 다정하게 아이를 안아 줍니다. 그러면 차츰 아이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어머니라는 존재와 사랑이 담긴 다정함만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대하시며, 당신 자신을 어머니에 비교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바빌론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당신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집과 성전이 파괴된 것을 보았으며, 타국 땅으로 강제 이송되어 그곳에서 넋을 잃고 비탄에 잠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백성은 고국으로 되돌아와 폐허 속에서 모든 것을 재건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겪어 온 이런 비극은, 수많은 전쟁으로 파괴된 민족과, 극악무도한 테러나 비인간적인 착취의 희생자들에게서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집과 거리는 폐허가 되고, 그들 정체성의 상징이 되는 장소들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소유물은 약탈 당하고, 예배 장소는 파괴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피난길에 내몰리고, 숱한 사람들이 사막이나 바닷길을 가는 도중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 시기와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생활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현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도 사랑 가득히 일하고 계심을 믿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는 희망의 선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박해와 불의를 겪고, 유배 생활을 하는 이들 곁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우리 가정과 더불어, 우리 민족과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개인적 고통을 알고 계시며, 온 인류의 고통 또한 알고 계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를 이해하시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아십니다. 마치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어르는 어머니 같으십니다. 우리는 눈과 마음을 열고 그분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다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만큼, 우리는 그 사랑을 고통과 시련 중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며, 위로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그것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4). 이는 끼아라 루빅이 했던 구체적이고도 내면적인 체험이기도 합니다. “주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제게 주십시오……. 온통 저버림 속에서 헤매고 있는 세상 때문에 당신의 마음에 사무치는 고통을 제 마음 깊이 느낍니다. 저는 모든 병든 사람들과 외로운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누가 그들의 울음을 위로해 주겠습니까? 누가 그들이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절망한 이의 마음을 끌어안아 주겠습니까? 하느님, 저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성사(聖事)’가 되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당신의 팔이 되어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끌어안고, 이를 사랑으로 바꾸게 해 주소서.” *이 말씀은 독일의 한 교회일치 모임에서 택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하느님께서 하신 이 약속을 기억하며, 다른 교파 교회의 많은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이 말씀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파비오 챠르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