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장나무
(마편초과 낙엽관목)
꽃말:
깨끗한사랑
우리나라
어디서든 쉽게 볼수 있는 나무에요. 잎의 선접과 줄기에서
나는
누린냄새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영롱한
왕관같은 열매를 맺을 때 우리눈에 확 들어와요.
7월의
숲에서 십자모양의 흰꽃으로 은은한 향기를 내고 있지요.
누린내나는
나무임에도 꽃향기 그윽하고 열매 아름답고
천연방충제로나
한약재로 여러병을 다스리는 쓰임새 훌륭한 나무랍니다.
이
작은 나무만도 못할까? 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아요.
상대편의
선을 바라며 자비의 삶에로 풍덩~~!! 빠져보기로 해요.
(사진,
글; 최 마리안젤라)
2016년 7월 생활말씀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페 4,32)
누군가로부터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되고, 굳건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어려움이나 위험한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랑이 상호적인 것이 되면 희망과 신뢰는 더 굳건해지고,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 아이들이 잘 자라나기 위해서는 사랑이 가득한 환경에서, 그들을 사랑해 줄 누군가가 주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실상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세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달 생활말씀은 우리에게 서로를 사랑하라는 뜻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라고 하며 하느님 당신을 그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통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그저 단순한 감정이 아님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상대편의 선을 바란다는 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엄격한 요청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고, 군중들을 가엾게 여기셨으며, 죄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상대편의 선을 바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며, 기쁨과 시련을 함께 나누고, 그를 보살펴 주고, 그의 여정에 동반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상대편은 결코 낯선 사람이 아니라 내가 봉사하고자 하는, 우리의 형제자매입니다. 이는 유감스럽게도 매일매일 뉴스에서 듣고 있듯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경쟁자나 적수로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그들을 짓밟거나, 심지어 없애 버리려 할 때 일어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조금 비위에 거슬리거나, 우리가 속한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원한과 불신, 적대감 혹은 일종의 무관심을 쌓아 두고 있지는 않은가요? 생활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서로 너그럽게 대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매번 서로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자비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끼아라 루빅은 이에 대해, 자신의 첫 번째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 초창기에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끼아라와 그의 첫 친구들은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서로 간의 사랑의 서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초창기에는 한 무리의 처녀들이 사랑을 철저히 실천한다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끼아라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우리를 지탱해 주었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었고, 우리 사이의 관계에 먼지가 쌓이고, 일치가 약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가령,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결점이나 불완전함을 깨닫고 그들을 판단함으로써 서로 간의 사랑의 기류가 냉각될 때면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어느 날 우리는 서로 간에 ‘자비의 서약’이라고 불렀던 그 서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아침 포콜라레와 학교, 직장 등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웃을 그의 잘못과 결점을 전혀 기억하지 않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으면서 새롭게, 완전히 새롭게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곧 이런 완전한 대사면大赦免, 보편적인 용서를 우리 마음에 품고 모두에게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맺은 이 굳은 약속은 우리가 항상 용서하고 잊으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본받아 먼저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1) 자비의 서약! 이야말로 우리를 더 너그럽게 해 주는 방법이 아닐까요?
파비오 챠르디 신부
주1) 「이웃에 대한 사랑」, 2002년 11월 1일. 이슬람교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