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쓴풀(용담과 쓴풀속)

쓴풀의 꽃말:지각

용담은 용의쓸개이니 얼마나 쓸까요. 그리고 쓰다는 뜻이 더해진 쓴풀이니...

꽃피었을 때 뿌리채로 말려 귀한 약재로 쓰인답니다.

쓴플에는 여러종류가 있는데 개쓴풀의 뿌리는 쓴맛이 없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희귀식물로 구분되어 있어요.

어느시인은 하늘의 별이 땅에 쏟아졌다고 표현하는 꽃이지요

모든 말씀은 눈부시게 빛나는 광채.... 말씀들이 땅에 쏟아져내린 듯 살기로 해요.~~!!

(사진, 글; 최 마리안젤라)

 

 

 

  2016년 8월 생활말씀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마태 23,8)

 

‘생활말씀’을 살기 시작한 지 이미 70여 년이 흘렀습니다.

‘생활말씀’ 용지가 우리 손에 들어오면 그 해설도 읽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그 구절,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의 한 구절이 우리 마음에 남기를 바라고는 합니다. ‘생활말씀’은 단순한 묵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것을 살도록 초대하시어, 우리가 늘 사랑하고 우리의 삶이 하나의 선물이 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끼아라 루빅의 ‘고안 작품’이며, 그는 그 기원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진리에 목말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다른 많은 젊은이들처럼 나는 진리를 찾고 있었는데, 학문을 통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운동 초창기의 커다란 개념 중 하나로 나는 즉시 내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리는 인간이자 하느님이신 예수님 안에 육화되어 살아 있는데, 어디서 그 진리를 찾고 있나요? 우리가 진리에 이끌린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찾아 나서서, 그분을 따릅시다.”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그들은 복음서를 손에 들고 한 말씀 한 말씀 읽어 내려갔습니다. 모든 말씀이 새로웠습니다.1)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눈부시게 빛나는 광채였습니다. 모든 것이 온통 거룩했습니다! (…) 그분의 말씀은 유일무이하고, 영원하며 (…), 매혹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거룩한 조각가의 손으로 새겨진 이 말씀들은 (…)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생활 말씀이었으며,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말씀들이었습니다.”2)

그들은 그 말씀들이 과거 속에 정지되어 있지 않으며, 그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그분께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하시듯이, 계속하여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의 스승이신가요?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삶의 제안들과 수많은 생각의 스승들이 있는데, 그중 몇몇은 다소 엉뚱하고 심지어 사람들을 폭력으로 이끌어 가는가 하면, 개중에는 올바르고 빛이 가득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는 철학이나 정치, 시적인 표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깊이와, 우리를 사로잡는 위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삶의 말씀들’로 생활 속에 실천할 수 있고, 삶을 충만하게 해 주며, 하느님의 삶 자체를 전해 줍니다.

매달 우리는 그중 한 구절을 부각시킴으로써 차츰 복음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예수님의 생각을 지니게 되어 여러 다양한 상황에 답을 제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때로는 이 말씀을 함께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 이름으로 모인 모든 이들 사이에 살아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그 말씀을 설명해 주시고, 그것을 실현시키시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제안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생활말씀’의 뛰어난 독창성은, 우리가 그 말씀을 살 때 생겨난 경험담이나 은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에 대해 끼아라는 초창기에 일어났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우리가 체험하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는데, 경험한 것을 내어 줌으로써 그 경험은 그대로 남아 우리 내면의 삶을 고양시키며, 반면 내어 주지 않을 때 영혼이 차츰 메말라 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말씀을 하루 종일 열심히 살았고, 그 결실들을 단지 우리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첫 공동체에 들어오는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 이를 살 때는 더 이상 ‘나 자신’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말씀이, 공동체 안에서 ‘말씀’이 살아가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혁신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결실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1) 『영성의 저술/ 3』, 치타누오바, 로마 1979, 124쪽.

2) 같은 책, 128, 130쪽.

    스마트폰에서 www.liun.pe.kr 로 들어 가시면 항상 생활말씀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