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눈오는 날 아이들, 정태홍 아오스딩

2022년 2월 생활말씀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요한 6,37)

 

이는 예수님께서 군중과 하신 대화 중에 분명하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빵이 넘치도록 불어난 기적 이후에도 예수님을 찾아온 군중은 여전히 그분을 믿기 위해서는 표징이 필요하다고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 자신이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심을 밝히십니다. 더 나아가 당신께서 하느님 아버지이신 성부聖父에게서 사명을 받은 그분의 아드님, 곧 성자聖子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성자의 사명은 모든 피조물을, 특히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모두 따뜻이 맞아들여 그들을 다시 성부의 집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먼저 주도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셨으므로 모든 이를 예수님께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1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를 위해 각 사람의 마음에 ‘충만한 삶’에 대한 소망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이 삶은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와 나눔,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루는 친교와 나눔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누군가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낄지라도, 그 어떤 사람이든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무도 잃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 곧 복음福音입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며, 그분의 자애와 자비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비로우신 그분께서는 인내하시는 아버지시기에, 그 어떤 사람이라도 내면의 목소리에 이끌려 여정을 시작한다면 그를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는 종종 ‘도대체 예수님께서 내게 무엇을 바라시기에 나를 따뜻이 맞아들이신다는 것이지?’ 하는 의심병에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상으로 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기에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것에서 우리 마음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단지 그분의 이끄심을 받아들일 것만을 청하십니다.

그런데 이 초대는 우리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그토록 자애 넘치는 사랑을 받았음을 알게 될 때는, 우리 역시 모든 이웃 안에 계신 그분을 따뜻이 맞아들여야 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2 곧 남자나 여자, 젊은이나 노인, 건강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 우리 문화에 속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우리는 모든 이웃 안에 계신 그분을 따뜻이 맞아들여야 하며, 그 누구도 물리치지 않아야 합니다.

 

“…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생활말씀을 살고 있는 캐나다 퀘벡Quebec의 어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프랑스,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콩고 등 세계 각지에서 캐나다로 이주해 온 많은 가정들을 따뜻이 맞아들이는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덕분에 이주민들은 모두 환대를 받습니다. 때로는 현지의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니, 이는 이주민들의 여러 요청에 응답해 주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난민이나 체류자 신분에 맞도록 해당 양식의 서류를 작성해 주거나, 그들의 자녀들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일, 또는 이주민들이 살게 될 동네를 함께 다니며 안내해 주는 일 등입니다.

프랑스어 강좌에 등록시키고, 일자리를 구해 주는 것도 중요한 몫입니다.

이 공동체의 멤버인 기Guy와 미슐린Micheline은 자신들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전쟁을 피해 캐나다에 도착한 어느 시리아 가정이, 또 다른 시리아 가정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가정은 이제 막 도착해서 아직 갈피를 못 잡고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누리 소통망 서비스를 통해 연대하여 도울 수 있는 구조를 활성화하였고, 많은 이웃이 침대, 소파, 식탁, 의자, 식기, 의류 등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린이용 책과 장난감들도 도착했는데, 이것은 저희 공동체 가정의 어린이들이 부모님에게서 이주민 가정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듣고 자발적으로 내준 것들이었습니다. 시리아에서 온 이 이주민 가정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받게 되었고, 그들 역시 그 여분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다른 가난한 가정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즈음 그달의 생활말씀을 받게 되었는데, 때마침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이 말씀을 우리 삶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곧 모든 이웃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들 가까이에 계시다는 점을 개인이나 공동체 차원으로 증거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끼아라 루빅의 이러한 글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 이는 매우 궁핍한 사람들, (…) 삶에서 가혹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 뉘우친 죄인들을 향해 마음을 넓히고 팔을 활짝 벌려 이들을 맞아 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빗나간 이웃이 내 친구거나 형제, 혹은 낯선 사람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기쁘게 맞아 주며 수천 번이라도 용서하게 합니다. (…) 이 사랑은 재지 않으며, 비교를 당하지도 않습니다.

자비로써 사랑할 때 그 사랑은 영혼이 원래 지니고 있던 사랑보다 더욱 풍성하고 보편적이며 더욱 구체적으로 피어납니다. 그리고 영혼은 자신 안에서 예수님 닮은 마음이 피어남을 느낍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자신의 입술 위에 “저 군중이 가엾구나.”(마태 15,32)라고 하신 그분의 거룩한 말씀이 되살아남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 자비는 사랑의 가장 드높은 표현이자 사랑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고통보다 우월하니, 고통은 이 땅 위에만 존재하지만 사랑은 저세상에서도 남아 있으므로 그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희생보다 자비를 더욱 기뻐하십니다.≫3

 

레티치아 마그리

포콜라레운동 총본부 「생활말씀」 편집위원

 

 

 

 

 

각주>

1 요한 복음 6장 44절 참조.

2 마태오 복음 25장 45절 참조.

3 끼아라 루빅, 「고통을 알게 될 때」, 『영성 교의La dottrina spirituale』, 치타누오바 출판사, 로마, 2006, 이태리어 원본 140-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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