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대청호의 일출; 정태홍 아오스딩

2024년 1월 생활말씀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루카 10,27)

 

올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은 북반구 전역에서는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지내고, 남반구에서는 ‘성령 강림 대축일’ 주간에 지낸다. 올해 이 기도 주간의 텍스트는 부르키나파소 Burkina Faso의 어느 교회일치운동 팀이 마련하였다.)은 위에 나오는, 구약 성경에서 유래된 구절을 묵상의 실마리로 제시합니다. (이번 달 생활말씀이 나오는 복음서의 대목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 중에 만난 율법 교사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으십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해서 대화가 시작되고, 예수님께서는 대답 대신 그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이로써 그분은 질문하는 사람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십니다.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 둘을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 정신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 율법 학자는 계속 이렇게 질문합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에 대한 대답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이를 통해 그분께서는 ‘이웃’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다양한 유형으로 열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연민을 묘사하시면서, 이러한 자세가 항상 우리 행동의 바탕이 되어야 함을 일깨우십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다른 이들의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 한 것처럼, 우리 주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벌 어지는 상황들에 우리도 몸소 깊숙이 동참하면서, 그 어떤 두려움도 갖지 말고, 모든 이를 돕고 지지하며 격려하고자 애쓰는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다른 사람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해 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황금률’입니다. 간디는 이런 적절한 표현으로 황금률을 설명합니다.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해를 끼친다면, 반드시 나 자신에게도 스스로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만일 우리 이웃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영신적인 것이든, 우리가 이에 무관심하거나 체념해 버린 상태로 있다면,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의 정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에서는 불평등, 수준 차이, 소외, 멸시 등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 우리가 이웃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타인으로 여기며, 우리의 평온을 방해하고 우리의 계획을 흩뜨리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삶은 현 순간에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일 때, 흥미로운 가능성들이 열리고, 예기치 않았던 활동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빅토리아 Victoria에게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성당에서 제 옆에 앉아 있던 어떤 아프리카 여성의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는 노래를 정말 잘 들었다고 기쁘게 말하면서, 그 여성에게 그 성당 성가대에 가입하면 어떻겠냐고 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성은 ‘적도 기니’라는 나라에서 온 수녀님이었고, (이곳 스페인) 마드리드에 잠시 들른 것이었습니다. 그 수녀님이 일하시는 기관은 버려진 아기들, 신생아들을 받아들여 성인이 될 때까지 동반하면서, 대학 공부나 직업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재봉 작업장 운영을 시작했는데, 재봉틀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수녀님이 다른 재봉틀들을 찾으실 수 있도록 돕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대한 신뢰의 마음을 갖고자 했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고 있던 이야기를 다 듣고 계셨으리라고, 또 저로 하여금 계산하지 않고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셨으리라 확신했습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기술자를 알고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사랑으로 연결되는 활동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술자가 재봉틀 여덟 개를 수리해 주었고, 다리미도 하나 찾아 주었습니다. 또 다른 친구인 부부가 자원하여 그 재봉틀과 다리미를 마드리드까지 가져다주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이틀간 받은 휴가의 목적지를 바꿔 가면서, 거의 1,000킬로미터나 차를 운전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희망의 재봉틀들’은 땅과 바다를 거치는 기나긴 여정 끝에 (적도 기니의 수도) 말라보Malabo까지 잘 도착했습니다. 적도 기니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들은 온통 감사하는 표현으로 가득했습니다!”

 

파트리치아 마촐라

포콜라레운동 총본부 「생활말씀」 편집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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