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공주 유구 축제에서 촬영한 수국 ; 정태홍 아오스딩

2025년 7월 생활말씀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루카 10,33)

마르틴Martine은 지금 유럽 어느 대도시의 전철 안에 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데에 열중해 있습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가상 현실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각자 고립된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 눈을 맞추며 바라볼 수도 없게 된 것인가?”

이는 특히 물질적으로는 부유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점점 더 빈곤해져 가는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언제나 복음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으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제안입니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면서 시작된 긴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는 유명한 비유로 답하십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의)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제 한 명과 레위인 한 명이 (각각 길을 가다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어떤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강도들에게 습격을 받은 것이었는데, (초주검이 된 채 쓰러져 있는) 그를 보고서는 사제도, 레위 인도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이웃 사랑에 대한 하느님의 계명을 잘 알고 있던 그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한 외국인을 (이웃 사랑의) 본보기로 제시하십니다. 그 외국인은 (당시 유다인들의 관점에서는) 이교도이자 적으로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상을 당한 그 여행자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는 내면으로부터,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그 사마리아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죄로 인해 상처를 입었기에, 바로 다음과 같은 점이 예수님 당신의 소명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와 (무조건적인) 무상無償의 용서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이를 통해 그들도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 다른 이들과 서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지려면, 곧 그분처럼 완전해지려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가득히 드러내 보여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사랑은 절대 가치로서 다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 이 사랑의 가장 드높은 표현이 바로 자비입니다. 자비는 매일 가정, 학교, 직장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단점과 과오를 더 이상 마음속에 담아 두지 않고 항상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용서하게 합니다. 아니, 그 잘못들을 잊어 버리게 해 줍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이 율법 교사와의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최종적이고도 결정적인 답변을 다음과 같이 명확한 권고로써 표현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 누구에게나 거듭하시는 당부입니다. 곧 삶의 여정에서 하루하루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노력을 먼저 기울이면서,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복음에서 말하는,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을 생활화하기 위해 예수님께 무엇보다 먼저 다음과 같은 것을 청하도록 합시다. 곧 우리 자신을 가로막는 편견과 무관심에서 벗어나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도록 치유해 주시기를 그분께 청합시다.

그리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연민의 마음을 지니게 하는 공감 능력을 그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우도록 합시다. 연민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목숨까지 걸면서 위험을 무릅쓰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을 즉시 내딛고자 하는 그의 신속한 자세,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그 사람의 고통을 나 자신의 것이 되게 하는 그의 열린 마음을 닮도록 합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다음은 한국의 어느 젊은 여성의 경험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어떤 청소년을 도와주려고 했어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아이였고,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몰랐지만 용기를 내어 한번 해 보았어요. 그렇게 도와주면서, 놀랍게도 제 내면의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어요.”

이 생활말씀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人道主義,humanism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열쇠를 줍니다. 곧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습imago Dei’이 반영되는 보편 인간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해 주고,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의미’가 지닌 물리적, 문화적 한계를 용기 있게 극복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라는 (개념의) 경계선을 ‘모든 이’라는 (개념의) 지평으로 넓히는 것이 가능해지고, 사회적 삶의 토대 자체를 재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레티치아 마그리

포콜라레운동 국제 본부 생활말씀 편집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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