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감곡 매괴성당 박물관에서 ; 정태홍 아오스딩

2026년 1월 생활말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에페 4,4)

 

올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에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담긴 한 가지 주제에 특별히 집중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른바 ‘감옥에서 보낸 편지들’에서 자신의 편지를 받을 이들에게, 그들의 신앙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를 일치를 통해 세상에 보여 주라고 당부합니다.

그 일치는 단 하나의 믿음과 단 한 분의 성령, 그리고 단 하나의 희망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오직 그 일치를 통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증명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다시금 희망에 대해 깨닫고 희망을 살도록 일깨워 줍니다. 그렇다면 희망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우리가 그 희망을 살아 내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일까요? 희망은 모든 이의 선익善益을 위해 우리가 보호하고 가꾸며 마침내 결실을 맺어야 할 새싹이며 동시에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희망이 지정해 주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그 좁은 산마루 길입니다. 즉 우리가 택하는 그 소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최전선에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최전선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충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그 충실함에 매일 매시간 충실해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소명,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부르심은 단지 개인과 하느님 사이의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소집召集되는 것’, 곧 함께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을 살아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 간의 일치에로 함께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끼아라 루빅의 발언과 글에서, 그의 영성의 고유한 측면인 ‘일치’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고 있는 대목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일치란 우리 사이에 계신 예수님 현존의 결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존은 심오한 행복의 원천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일 일치가 그리스도인에게 이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일치가 손상되는 것만큼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거스르게 되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적으로 되살아나는 다음과 같은 개인주의의 유혹에 굴복할 때마다 일치를 거슬러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곧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유혹, 또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와 권리를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멸시하면서 자신의 판단, 이해타산 또는 위신 등에 따라 행동하고 싶은 유혹 등이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과테말라에서는 서로 다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간의 대화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라미로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적어 보내 주었습니다.

“저희는 여러 교회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그룹과 함께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준비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젊은이들과 함께 기획한 예술 축제와 서로 다른 여러 교회에서 거행하는 예식들도 포함되었습니다. (과테말라) 가톨릭주교회의는,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모임에서 있을 (교회일치운동의) 나눔 시간을 잘 준비하는 차원에서, 저희에게 이러한 경험을 계속해 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 나눔의 시간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오는 한 그룹의 가톨릭 주교님들과 서로 다른 여러 교회의 신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였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활동들 너머, 우리 모두 사이의 일치와 그 일치가 가져오는 결실들을 매우 강도 높게 체험하곤 합니다. 곧 형제애와 기쁨, 그리고 평화의 체험입니다.”

 

파트리치아 마촐라

포콜라레운동 국제 본부 「생활말씀」 편집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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